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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 시리즈 - 에피소드 1: 김삿갓과 오만한 양반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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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크립션

    조선 후기 가장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의 삶과 재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 드라마 시리즈입니다. 첫 에피소드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김삿갓이 오만한 양반과 시를 통해 지혜롭게 대결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재치 있는 풍자와 해학으로 양반사회의 모순을 꼬집는 김삿갓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후킹멘트

    "누군가의 지위와 권력은 일시적인 것. 하지만 재치와 지혜는 영원히 기억됩니다."
    조선시대,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삿갓을 쓰고 팔도를 유랑하며 시와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김삿갓. 그는 권력과 재물 앞에서도 당당했고, 불의를 보면 날카로운 풍자로 세상을 일깨웠습니다. 이 시리즈는 역사 속에 묻혀있던 김삿갓의 삶과 그가 남긴 재치 있는 이야기들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첫 에피소드에서는 오만한 양반과 김삿갓의 지혜로운 대결을 만나보세요.

    ※ 가을 산길, 김삿갓의 등장과 배경 소개

    가을 바람이 산길을 따라 소슬하게 불어오던 때였습니다. 나뭇잎들은 붉게 물들어 하늘거리고, 먼 산 너머로는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그 길 위에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허름한 도포에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삿갓을 깊게 눌러쓴 그 사람. 바로 김삿갓이라 불리는 김병연이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김병연.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역모 사건으로 집안이 몰락한 후, 세상을 등지고 방랑의 길을 택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항상 삿갓을 쓰고 다녔고, 사람들은 그를 '김삿갓'이라 불렀습니다.

    "가는 세월 머무는 법 없고, 피는 꽃은 지는 법 있네. 부귀영화 꿈같은 것을, 어찌 사람 탐내는가."

    김삿갓의 입에서 흘러나온 시구가 가을 산길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 들고 다니는 지팡이와 술병 하나. 그것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부와 명예를 좇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로 한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멀리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김삿갓은 발걸음을 조금 서둘렀습니다. 가을의 쌀쌀한 밤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배에서는 이미 꼬르륵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시를 짓고 노래를 불러 한 끼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김삿갓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에게 여행길의 만남은 항상 새로운 시의 소재가 되었고, 삶의 지혜를 얻는 기회였습니다. 특히 그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양반들을 만나면 그들의 위선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시를 지어 한바탕 소동을 벌이곤 했습니다.

    마을로 들어서자 저잣거리의 활기찬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장날이었던 모양입니다. 상인들의 외침과 흥정하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김삿갓은 그 속에 자연스레 섞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단지 한 명의 나그네로만 보였을 뿐.

    한참을 거닐던 김삿갓은 마을에서 가장 큰 기와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분명 이 마을의 유력한 양반이 살고 있을 집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그 집 대문이 열리며 화려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가 나왔습니다. 그의 뒤로는 서너 명의 하인들이 공손히 따르고 있었습니다.

    "자, 내일 아침 일찍 나갈 테니 말을 준비해 두거라. 그리고 오늘 들어온 시장 물건들은 모두 잘 챙겨 두었느냐?"

    "네, 영감님.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김삿갓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곧 해가 저물 텐데, 어디선가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 마을 어귀, 오만한 양반과의 첫 만남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저녁노을이 마을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김삿갓은 여전히 하룻밤 묵을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앞서 본 양반이 하인들을 이끌고 마을 어귀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김삿갓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여보시오, 양반 나리."

    김삿갓이 뒤에서 부르자 양반은 놀란 듯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즉시 불쾌함이 번졌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삿갓을 쓴 낯선 사람이 자신을 부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감히 누가 나를 함부로 부르는가? 넌 어디서 온 걸인이냐?"

    양반의 목소리에는 거만함이 가득했습니다. 김삿갓은 그런 반응에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걸인은 아니옵니다. 다만 시를 짓고 천하를 유랑하는 시인일 뿐이지요."

    "시인이라고? 하하, 양반도 아닌 자가 무슨 시를 짓는다고. 글이나 알고 하는 소리인가?"

    양반의 비웃음에도 김삿갓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글을 모르면 어찌 시를 짓겠습니까? 이 몸이 비록 초라하나 마음만은 구름보다 높사옵니다."

    김삿갓의 말투와 표현에 양반은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습니다. 보통의 걸인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 다시 코웃음 쳤습니다.

    "그래, 그럼 네가 정말 시를 지을 줄 안다면 한번 지어보거라. 내가 한 수 들어보마."

    양반의 도전에 김삿갓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로 땅바닥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작은 돌멩이를 주제로 시를 지어드리겠습니다."

    양반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찮은 돌멩이를 가지고 무슨 시를 짓겠다는 것인지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김삿갓은 이미 눈을 감고 시를 읊기 시작했습니다.

    "천년을 누워있어도 아무도 묻지 않고,
    만년을 서 있어도 그 누구 알아주지 않네.
    비바람 맞으며 홀로 견디는 그 모습,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더 값진 것이로다."

    시를 들은 양반의 얼굴이 조금씩 변했습니다. 하찮은 돌멩이로 이토록 깊은 뜻을 담은 시를 지은 것이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쉽게 감탄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흠, 그럭저럭 들을 만하구나. 하지만 진짜 실력은 아직 모르겠다. 내 집으로 와서 더 지어보아라. 잘 짓는다면 하룻밤 재워주마."

    김삿갓이 바로 그것을 원했던 터라 기쁘게 수락했습니다. 양반은 김삿갓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인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주인을 따랐습니다. 평소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주인이 허름한 나그네를 집에 데려가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둠이 내릴 무렵, 김삿갓은 그 양반의 집 대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넓은 마당과 웅장한 기와지붕, 정갈하게 꾸며진 정원. 분명 이 지역에서 손꼽히는 부자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자, 이제 네 실력을 제대로 보여다오. 내 너에게 진짜 어려운 제목을 내리라."

    양반의 눈에는 이제 김삿갓을 시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김삿갓과 오만한 양반의 진짜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 양반의 집 대청마루, 시를 통한 대결의 시작

    촛불이 은은하게 대청마루를 밝히고 있었습니다. 솔향이 그윽한 마루 위에는 양반과 김삿갓이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양반은 비단 도포에 갓을 벗어 옆에 두었고, 김삿갓은 여전히 삿갓을 쓴 채였습니다. 하인들이 술상을 차려 내왔습니다. 도자기 술병에서는 맑은 술이 따라졌고, 안주로는 밤과 대추, 말린 생선 몇 점이 놓였습니다.

    "자네는 이름이 뭐라 했던가?"

    양반이 술잔을 들며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김삿갓이라 부릅니다. 이 삿갓이 제 얼굴이 되었으니까요."

    김삿갓이 대답하자 양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왜 항상 그 삿갓을 쓰고 있느냐? 지금은 집 안인데도?"

    "얼굴을 보이는 것보다 가릴 이유가 더 많은 사람입니다."

    김삿갓의 말에 양반은 호기심이 더해졌지만, 더 묻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본격적으로 시 대결을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 내 어려운 주제를 하나 내리니 한시를 지어보거라."

    양반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주제는 '달 아래 핀 매화'다. 매화는 있으되 그 주변에 눈이 있어야 하고, 달은 밝되 구름에 가려 있어야 한다.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까다로운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삿갓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방 안은 고요했고, 촛불만이 일렁일 뿐이었습니다. 잠시 후, 김삿갓이 입을 열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 아래
    하얀 눈밭에 외로이 선 매화 한 그루
    차가운 바람에도 꿋꿋이 향기 뿜어내니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선비의 절개로다."

    양반의 눈이 커졌습니다. 이토록 빠르게, 그것도 자신이 낸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시를 지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보다 실력이 있구나. 하지만 아직은 평범한 시일 뿐. 이번에는 더 어려운 주제를 내겠다."

    양반이 승부욕을 불태우며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밤중에 우는 까마귀'를 주제로 하되, 그 까마귀는 슬프면서도 기쁘고, 울면서도 웃어야 한다. 또한 그 울음소리는 듣기 싫으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

    더욱 까다로워진 조건에 하인들은 '저건 불가능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양반은 승리를 확신하는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김삿갓은 여전히 평온했습니다. 그는 술잔을 비우고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방 안의 긴장감이 높아졌습니다.

    "깊은 밤 까마귀 울음에 잠을 깨니
    그 울음 속에 내 삶의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네
    듣기 싫은 그 소리 귀에 거슬리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실의 소리 오히려 아름답구나."

    양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김삿갓은 또다시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습니다. 이제 양반의 표정에서는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껴졌습니다.

    ※ 양반의 집 마당, 김삿갓의 기지와 재치

    밤이 깊어갔지만 양반과 김삿갓의 대결은 계속되었습니다. 양반은 더 이상 대청마루에 앉아있지 못하고 마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는 초조함에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더욱 어려운 주제를 고민했습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고, 달은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네 실력의 한계를 보여주마."

    양반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멀리서 온 편지'다. 그런데 그 편지는 읽을 수 없어야 하고, 보낸 이는 알 수 없어야 하며, 받는 이는 슬프면서도 기뻐해야 한다. 또한 그 편지는 무거우면서도 가벼워야 한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었습니다. 하인들은 숨을 죽였고, 양반은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김삿갓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달빛이 그의 삿갓에 비췄습니다. 그는 천천히 마당을 거닐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잠시 후,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시를 읊기 시작했습니다.

    "멀고 먼 하늘에서 온 별빛의 편지
    글자는 없어 읽을 수 없고 보낸 이 알 길 없네
    슬픈 그리움 안고 기쁜 희망 전하니
    무거운 인생의 진리 담아 가벼이 내려앉네."

    양반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승부욕이 아닌 감탄의 표정만이 남아있었습니다. 하인들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대단하구나... 도대체 자네는 누구인가?"

    양반이 물었습니다. 김삿갓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리께서는 왜 저와 같은 방랑시인에게 이토록 까다로운 조건을 내시는지요?"

    김삿갓의 질문에 양반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시인을 만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요즘 세상에는 양반이라는 이들이 시를 짓는다고는 하나, 그저 형식만 갖추고 내용은 텅 빈 것들뿐이었으니..."

    양반의 솔직한 고백에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자신의 삿갓을 벗었습니다. 촛불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은 의외로 젊고 선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깊은 슬픔과 지혜가 동시에 깃들어 있었습니다.

    "이 삿갓 아래 숨은 것은 단지 얼굴이 아니라 세상의 슬픔과 아픔을 보는 눈입니다. 나리께서는 부와 명예를 가지셨지만, 진정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계신지요?"

    김삿갓의 질문에 양반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깊은 생각에 잠길 뿐이었습니다. 김삿갓은 다시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더 이상의 시 대결은 필요 없을 듯합니다. 이제 이 방랑시인에게 약속하신 하룻밤 잠자리만 허락해 주신다면..."

    양반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 했습니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네. 자네 같은 진정한 시인은 처음 만나보았네. 하룻밤이 아니라 며칠이고 머물러도 좋아. 내 자네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

    하인들에게 손짓하며 양반이 말했습니다.

    "어서 객실을 준비하고 따뜻한 음식을 더 가져오거라!"

    달빛 아래, 김삿갓과 양반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나눈 시는 단순한 겨루기가 아닌, 영혼의 대화였습니다.

    ※ 양반의 집 서재, 김삿갓의 승리와 양반의 깨달음

    다음날 아침,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서재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책장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양반은 김삿갓을 자신의 서재로 초대했습니다. 벽에는 족자들이 걸려 있었고, 책장에는 수많은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습니다. 문갑 위에는 정교한 벼루와 붓, 먹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서재는 내가 가장 아끼는 공간이네. 오직 나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지."

    양반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김삿갓은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그는 한 권의 책을 가리켰습니다.

    "저것은 퇴계 이황 선생의 문집이군요."

    "그렇소. 자네도 퇴계 선생을 알고 있었나?"

    "제가 비록 방랑하는 몸이지만, 글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김삿갓의 대답에 양반은 더욱 호기심이 커졌습니다. 그는 김삿갓에게 붓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자네의 글씨도 한번 보고 싶구려. 어제 밤의 '멀리서 온 편지'를 주제로 한 시를 적어보게나."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이고 붓을 들었습니다. 먹을 갈고 정성껏 붓질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필체는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이 있었습니다. 양반은 그 모습을 감탄하며 지켜보았습니다.

    글을 다 쓴 후, 김삿갓은 잠시 서재를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습니다.

    "나리께서는 왜 이토록 많은 책을 모아두셨습니까? 읽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소유하는 기쁨 때문입니까?"

    양반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처음에는 읽기 위해 모았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유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던 것 같구나. 많은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학식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김삿갓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책은 읽혀야 그 가치가 있습니다. 읽히지 않는 책은 그저 종이 뭉치에 불과하지요."

    양반은 잠시 침묵했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자네는 어제부터 나에게 시만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도 가르쳐주고 있구려. 이제 내 자네가 누구인지 알 것 같네. 자네는 분명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일 게야."

    김삿갓은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아득한 슬픔이 어렸습니다.

    "때로는 잃어버린 것이 더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나리께서는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것들이 진정 나리의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까?"

    양반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김삿갓의 물음은 그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습니다.

    "내 지금까지 많은 것을 소유하려 했지만, 정작 마음의 평안은 얻지 못했소. 자네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는구려."

    양반의 말에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제 더 이상 신분의 장벽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저녁 노을 지는 강가, 김삿갓의 여정 계속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온 세상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마을 뒤편 작은 강가에 김삿갓과 양반이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김삿갓은 다시 여행길에 오를 준비를 마쳤습니다. 낡은 도포와 커다란 삿갓, 그리고 손에 든 지팡이가 전부였습니다.

    "정말 가야만 하는가? 내 집에 머물러 시를 가르쳐줄 수는 없겠나?"

    양반이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김삿갓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 집은 이 넓은 세상이고, 제 스승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한곳에 머물러 있다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겠지요."

    강물은 고요히 흘러가고, 물가의 갈대는 바람에 살랑거렸습니다. 노을빛이 물결 위에 일렁이며 아름다운 빛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자네를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네. 자네의 시와 지혜는 내 마음에 큰 깨달음을 주었소."

    양반의 진심 어린 말에 김삿갓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저 역시 나리를 만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에는 보이는 모습과 달리 마음이 열려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요."

    김삿갓은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습니다. 그것은 그가 아침에 서재에서 쓴 시였습니다.

    "이 시를 나리께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언젠가 마음이 복잡하거나 혼란스러울 때 읽어보십시오."

    양반은 깊은 감사함을 표하며 그 종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춤에서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내 김삿갓에게 내밀었습니다.

    "이것은 자네의 여행길에 도움이 될 것이네. 거절하지 말게나."

    김삿갓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 주머니를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얼마간의 돈과 함께 작은 옥패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옥패는 선친께서 물려주신 물건인데, 이제 자네에게 전하고 싶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를 가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김삿갓은 감동한 표정으로 옥패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신분을 뛰어넘은 우정의 증표였습니다.

    "제가 이런 귀한 것을 받아도 될지..."

    "받게나. 자네는 나에게 그보다 더 값진 것을 주었으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새가 날아와 강물 위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김삿갓은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시 한 구절을 읊었습니다.

    "떠나는 새는 그림자를 남기지 않고, 흐르는 물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네."

    양반도 그에 화답하듯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내 마음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구려."

    김삿갓은 지팡이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의 삿갓 아래로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는 강가를 따라 걸으며 때때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양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노을이 점점 짙어지며 김삿갓의 모습은 붉은 실루엣으로 변해갔습니다. 곧 그 모습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시와 지혜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시는 마음의 창,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입니다."

    김삿갓, 그는 조선시대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방랑시인이었습니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시로 소통했던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권력과 재물보다 더 값진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소통과 이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김삿갓은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김삿갓이 가뭄에 시달린 마을을 만나 어떤 지혜와 희망을 전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음 이야기: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 시리즈 - 에피소드 2: 김삿갓과 가뭄에 시달린 마을"

    여러분의 마음에도 김삿갓의 지혜가 깃들기를 바라며, 오늘 이야기를 마칩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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